10월의 과학사: 지워진 10일

 1582년 10월 4일. 일과를 마치고 잠든 로마인들은 10월 15일 아침에 눈을 뜨게 된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똑같이 10일이 사라진 것이다. 로마 사람들의 인생에서 마법처럼 사라져버린 열흘의 시간. 이 시간은 마법사가 마법을 부린 것도 아니었고 사람들의 착각에 의해 발생한 사건은 더더욱 아니었다. 과연 어떤 이유 때문에 1582년 10월 5일부터 10월 14일까지의 순간이 로마에서 지워진 것일까. 이것을 알아보려면 먼저 날짜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구 공전의 모습.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형태이다.


 365일, 30일, 24시간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숫자이자 단위이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같은 년도, 날짜 단위를 공유하고 있으며 ( 물론 시간은 단위는 같지만 약간의 시차를 가지고 있다. ) 365일이 지나 한 살을 더 먹는 것 역시 어디에서나 똑같다. 1년과 한 달, 하루의 단위가 무엇으로 결정되는지는 이미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돌면 1년, 지구가 한 바퀴 자전을 하면 하루. 문제는 실제 천체의 움직임이 이렇게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초의 천문학이 태어나기 시작했다.

나일강의 위성사진. 나일강은 남쪽에서 북쪽방향으로 흐른다. 지중해 방향으로 거대한 삼각주를 확인할 수 있다.


 인류가 날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 계산을 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낀 것은 크게 두 가지 부분에서 드러났다. 첫 번째는 농사였다. 농작물의 씨를 뿌리고 수확을 하는 그 모든 사이클에는 정교한 시간 계산이 들어간다. 이집트에서 농사를 위해 가장 확실하게 알아야 했던 시기는 나일강의 범람이었다. 나일강의 홍수는 우리가 생각하는 자연재해라기보다 상류의 비옥한 토양을 채워주는 축복과 같은 존재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언제 나일강이 범람하게 되는지 알아야 농업 일정을 제대로 맞출 수 있었다. 당시 사용된 기법은 별이었다. 가장 밝은 별로 알려진 큰개자리의 시리우스가 새벽에 떠오르는 시기를 나일강의 범람 시기로 파악한 것이다. 그런 관계로 별의 위치 파악이 아주 중요한 과제였다.

니케아 공의회를 그린 바티칸 프레스코 그림. 이 공의회에서 부활절의 날짜를 확정 지었다.


 두 번째는 종교적인 측면이었다. 수많은 고대 문명이 여러 날 중 유독 춘분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다. 고대 로마에서는 춘분을 한 해의 시작으로 정했으며 기독교에서 가장 큰 명절인 부활절은 춘분 이후 뜬 첫 번째 보름달이 지난 일요일로 정해놓았다. 거기에 기독교 대표 상징 중 하나인 물고기 문양은 춘분점을 품고 있는 물고기자리에서 기원했다고 추측되고 있다. 이렇게 중요한 날인 춘분은 여러 문화권을 넘어 종교계에서도 기준점으로 자리 잡았다. 춘분을 정확하게 확인하고 계산하는 것은 천체의 움직임을 관측하고 알아내는 천문학의 첫 번째 미션, 역법 제정으로 연결되었다.

춘분점의 위치. 하늘의 적도와 태양이 지나는 황도가 만나는 점에 위치한다. 춘분과 추분에서는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고 알려져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달력은 태생부터 정확성에 큰 문제를 안고 있었다.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공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365.242일이다. 그러나 고대 이집트는 1년을 365일로 놓았으며 고대 로마에서는 무려 1년을 304일로 계산한 달력을 사용하기도 했다. 문명마다 다른 방식으로 1년을 계산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만들어진 달력의 정확도는 시간이 지나면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계절 별로 정해졌던 축제가 전혀 다른 날씨에 벌어지는 촌극이 나타난 것이다. 이를 해결한 것이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율리우스력이었다. 카이사르가 개혁한 달력에서는 1년의 길이가 365.25일이었다. 기존 달력들보다 훨씬 정확한 달력이었고 당시 강대해진 로마 제국의 영향력 덕분에 배급 또한 빠르게 이뤄졌다. 이 달력을 러시아와 동구권에서 무려 1900년대까지 사용했으니 그 수명이 아주 긴 달력이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동상


 이렇게 혁신적이었던 율리우스력도 작은 오차가 쌓이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고작 0.0078일의 차이가 점차 누적되면서 16세기에는 춘분의 날짜가 10일 가까이 차이가 나기 시작한 것이다. 로마에서도 이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었고 여러 차례 회의가 열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 결론이 제대로 나오지 못한 채 16세기를 맞이했고 그러던 중 1572년, 제226대 교황인 그레고리오 13세가 즉위하게 된다. 추기경 시절 달력 개혁 위원회에 선정되기도 했던 교황은 1582년 2월 24일 칙서를 발표하게 된다. 이 칙서에는 새로운 역법이 담겨있었다. 1년의 길이는 365.2425로 기존 율리우스력의 오차보다 더 정확도가 뛰어났으며 잘못된 달력으로 인해 위치가 오락가락하던 부활절이 안정적으로 3월 말부터 4월 말 사이의 시기에 고정되었다. 그리고 기존에 사용하던 달력과의 오차를 한 번에 줄이기 위해 그해 10월 5일부터 10월 14일까지 10일을 세상에서 지워 버리기로 결정했다.

그레고리오 13세의 초상화


 교황의 칙서는 가톨릭 영향권에서는 빠른 속도로 받아들여졌고 그 결과 사라진 날짜의 차이는 조금씩 있지만 2~3년 안에 새로운 달력, 그레고리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당시 이뤄진 종교개혁이었다. 가톨릭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개신교 입장에서 교황의 칙서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리 좋은 모양새가 아니었다. 그 결과 유럽의 나라별로 날짜를 다르게 사용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대표적으로 영국의 경우는 170년이 지난 1752년이 되어서야 그레고리력을 받아들였고 그 사이 더 커진 오차 때문에 영국 역사에서는 10일에서 하루가 추가된 11일이 사라지게 되었다.

윌리엄 호가스의 <선거 파티(Humours of an Election)>. 1750년대 영국의 선거 현장을 풍자한 그림인데 하단에 ‘우리에게 11일을 돌려줘!’라는 문구가 쓰여있다. 당시 영국에서 그레고리력을 받아들이면서 생긴 혼란을 보여준다.


 받아들인 시간대는 다 차이가 있지만 ( 우리나라 역시 대한제국 시절 음력 1895년 11월 16일 다음 날을 그레고리력 1896년 1월 1일로 두면서 날짜를 맞췄다. ) 지금은 세계 표준으로 이 그레고리력이 사용되고 있다. 이로 인해 어디를 여행해도 날짜를 세는 것에 차이가 있어 문제가 생기는 현상은 없어지게 되었다. 이렇게 오랜 기간 혼란을 가져왔던 역법의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구를 떠나 더 먼 우주를 개척하려는 요즘. 다른 행성에서 사용 가능한 역법의 필요성도 나오기 시작했다. 그 결과 실제 화성에서 사용 가능한 다리우스력이라는 1년을 13개월로 정한 역법도 만들어져 있다. 이제 과거와 현재를 넘어 미래까지 달력의 영향력이 닿고 있다.

 우리가 일상 속에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셈했던 하루, 한 달, 일 년의 뒤편에는 수천 년의 시간 동안 누적된 천문학 관측과 계산, 종교와 인류 문화까지 다양한 자료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집 안 어딘가에는 꼭 붙어있어 우리에게 일정표가 되거나 장식품처럼 취급받는 달력이 사실은 과학과 문화의 오랜 협업 작품이라는 걸 생각하면 얼마나 귀중해 보이겠는가. 이제부터 연말 연초 애물단지처럼 쌓여 천대받는 달력에게 감사를 표해보자. 이 달력이 잘 작동하기 때문에 우리는 과거 사람들처럼 인생에서 강제로 며칠이 사라질 필요가 없지 않은가!


참고자료
1. 이정모. (2015). 달력과 권력. 부키
2. 매트 파커. (2020). 험블 파이: 세상에서 수학이 사라진다면(이경민 역). 다산사이언스
3. 김양희. (2016). [유레카] 달력 이야기: 사라진 시간. 한겨례
4. 이태형. (2020). 예수의 탄생을 알린 별자리 “물고기자리”. Science Times
5. 김진우. (2009). 1582년 그레고리력 채택. 경향신문
6. 제니 코헨. (2012). 6 Things You May Not Know About the Gregorian Calendar.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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